법에 있어서의 인간상에 관한 고찰
- 김종덕(법학박사, 계명대학교 법학과 교수)
국문요약
- 시대마다 전제하고 있는 인간상의 특징이 바로 법에 투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법의 역사는 법에 있어서의 인간상 변천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으며, 어떠한 법이 어떠한 양상을 띠는냐는 그 법이 인간에 대하여 가지는 기본적인 이해에 좌우된다.
- 인간상의 문제는 모든 법 이론의 출발점이 되는 동시에 또한 귀결점이 되는 것이므로 인간에 대한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 인간은 인격적 존재이고 그 인격은 의식적인 인격층과 무의식적인 인격층으로 구성되는 중층적 · 복합적 구조를 지닌다.
- 이 중 법에 직접 관련되는 자유의사의 인정여부에 관해서도 의사자유론과 의사결정론이 대립하고 있찌만, 인간에게는 절대적 의미에서의 자유의사의 존재보다는 어느 정도 유전적 소질이나 사회환경 등에 의해 제한을 받는 자유의사를 인정하는 이른바 상대적 자유의사가 있다는 복합적 인간상을 지닌다.
- 인간은 미완성의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나 다른 인간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기를 완성해 가는 사회적 · 역사적 · 문화적 존재이며, 인간을 단지 이상적으로 생물적으로 포착하기보다는 여러 가지가 조화를 이루고 통합된 조화의 인간 · 종합의 인간으로서의 전인적 인간으로 파악해야 한다.
- 형법이 기초하는 인간상도 정신적 · 영적 측면만을 중시하는 관념주의적 인간상이나 인간의 신체적 · 심리적 측면만을 중시하는 자연주의적 인간상과는 구별되는 구체적 · 현실적이면서 복합적인 전인적 인간상인 것이다.
-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는 성선설, 성악설 그리고 백지설이 있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성선설적 측면과 성악설적 측면이 동시에 내포된 혼합적 성격을 지니며, 다만 어느 측면이 강하느냐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할 것이다.
- 인간은 이윤추구와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하는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인 측면(법적 규율대상으로서의 인간상)을 지님과 동시에 공동체 내지 공익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양보할 줄 아는 공리적이고 이상적인 측면(윤리적 규율대상으로서의 인간상)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통합적이고 양면적인 인간상을 지니고 있다.
- 다만 이기적이고 비이성적 인간상과 공리적이고 이성적 인간상은 서로 병렬적으로 위치하면서 사정에 따라 어느 측면이 강하게 발현된다.
- 실정법에서는 이러한 여러 인간상을 바탕으로 그 법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어느 특정 측면에 더 중점을 두고 제정된다 할 것이다.
결론
- 인간은 시대에 따라 다소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 즉 로마법에서의 인간은 각자 개개인의 인간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물건으로서의 인간이었고, 고대에서의 각 개인도 독자적인 지위를 갖지 못하고 공동체의 단순한 구성분자일 뿐이었다.
- 중세법에서는 관습과 규범을 통하여 의무와 사회에 결부된 인간으로 인식되다가 근대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인을 사회로부터 해방시켜 의무에 구속된 인간을 법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익에 의하여 인도되는 개인을 법의 출발점으로 삼게 되었다(이른바 인격화한 이기주의).
- 계몽주의와 근대 자연법사상 하의 인간은 자기 권익 추구에 집중하는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이며 합리적인 인간으로서, 어떠한 의무와 사회적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오직 개인이익을 보장하는 법적 구속에만 복종하는 자유로운 인간형이었고, 따라서 서로 평등하다고 가정되었다.
- 현대와 같이 변화가 가속되고 다양한 시대에는 기존의 전통적 인간상이 그대로 타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근대적 인간상 등이 바탕은 되더라도 현대에 알맞은 인간상의 정립이 요구되어진다.
- 추상적인 주체이자 고립된 개체로서 보았던 기존의 인간상이 현대에 있어서도 그대로 더 이상 타당하지 않고 이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
-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서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은 물론 인간과 이중적 관계를 가지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공존인간)으로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 아버지는 아버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서 존재하듯 타자의 존재와 관려해서만 내가 존재한다.
- 인간이라는 것은 독립된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기대는 종적 존재인 것이다. 인간존재는 더 이상 (고대의 본질철학과 형이상학에서처럼) 모든 인간에 대해 일반적이고 동등한 평균형의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각자의 개벌적인 생활영위에 따라 때로는 다소간 공통적인 면도 있고 때로는 다소간 유일무이한 다양한 속성을 지닌 존재이면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화된 집단적 인간인 것이다.
- 칸트가 말하듯이 형이상학적 양심이론에 따른다면 모든 인간은 그 자신 내부에 있는 모든 경험과 무관하게 선험적으로 도덕법칙에 따라 선(법)과 악(불법)을 인식하고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바, 이러한 구별능력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인간을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때 그 때의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상당하게 행위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대부분 사회(타인이나 이웃)로부터 그에게 매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으로 상당하지 않는 인간의 행위는 단순히 그 사람이 올바르게(상당하게)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잘못을 저질렀다는 데에만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즉 타인에게도 다소간 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 요컨대 법에 있어서의 인간상 파악은 여러 인간상 중에서 어떠한 면이 강조되고 부각되는가라는 문제이다. 이와 같이 법과 인간이 결합되는 이른바 법률적 인간은 하나의 독립된 단일구조가 아닌 여러 인간상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복합형태를 띤다고 할 것이다. 이는 위에서 고찰한 인격적 인간상이나 전익적 인간상에서도 그리고 이기적 인간상과 공리적 인간상에서는 물론 이성적 인간상과 비이성적 인간상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두 복합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 각종 실정법은 인간상의 어느 한 면만이 아니라 양면 모두(종합적이고 양면적인 인간)를 직 ·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따라서 현대법에서의 인간상이라고 하여 항상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만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법에서 인간을 파악할 때에는 구체적 형태에 따라 때로는 모든 인간에게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평등성이 주어지는 인간상을 바탕으로 하고, 이에 추가하여 각 개인마다 각각 다른 특징과 능력 등을 지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상이 결합될 때에 비로소 법이 추구하는 법적 정의(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의 실현은 물론 합목적성(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합리성)의 실현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 현대법에 있어서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인간상과 함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상이라는 양자 모두를 동시에 고려한 이른바 종합적 인간상을 전제로 함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 그러므로 한 시대의 법은 결코 "현실적이고 갭려적인 인간들"에만 초점을 맞출 수는 없다.
- 입법자들은 법에 의해 부여된 권리의 주체로서 그리고 법에 의해 과해진 의무의 주체로서 전제되어 있는 인간유형을 고려하고 참작하면서 한 시대의 법을 구상하고 제정하여야 한다.
- 왜냐하면 인간상에 대한 견해들 중 라드브루흐의 공동체적 인간상이나 성선설이나 성악설도 비판론적이거나 아니면 낙관론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어느 하나의 관점에서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입법자들은 추상적 인간상과 구체적 · 현실적 인간상을 동시에 고려한 종합적인 관점에서 파악해야하 한다.
- 인간은 양면적이고 종합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면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상을 정립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 따라서 현대법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인 천사도 도적도 아닌, 그러면서도 선은 물론 악에도 소질이 있고 이기심도 공공심도 동시에 구비하고 있는 인간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 인간의 양면성 · 복합성이 전제되어 있는 한 항상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 있으며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것이다.
- 이러한 점에서 종합적인 인간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복잡 다양한 현대적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해결하는 데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 그러나 시대마다 법질서가 상징하는 인간상이 있더라도 그것은 그 시대에 필요한 인간상일 뿐이므로 인간생존의 방식이나 사회 혹은 과학이 발달하게 되면 기존의 인간상이 그대로 계속 타당할 수는 없기에 법에 있어서의 인간상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 이와 같은 법은 시대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기에 급속한 사회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에는 현대에 알맞은 인간상의 정립이 요구되어지며, 범죄와 형벌에 관한 이론도 여기에 맞도록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